남해 여행을 갔다가 발효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막걸리도 마시고, 식초도 보고, 치즈도 먹으면서 “이게 다 발효로 만들어진다는데, 정확히 어떻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돌아와서 이것저것 찾아보니 생각보다 원리가 단순하고 재미있어서, 여기에 정리해봅니다.

발효란 무엇인가?

발효(Fermentation)는 미생물이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당(탄수화물)을 분해하여 에너지를 얻는 대사 과정입니다.

곰팡이든 세균이든, 미생물도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산소가 있으면 우리처럼 호흡을 하지만, 산소가 없으면 “발효"라는 비상 수단을 씁니다. 효율은 떨어지지만 살아남을 수 있거든요. 이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이 바로 에탄올, 젖산, 초산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가 술, 빵, 치즈, 식초라고 부르는 음식들은 전부 이 부산물을 활용한 것입니다.

세 가지 발효, 세 가지 미생물

오늘 다룰 발효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1. 에탄올 발효 - 효모(Yeast)

  • 효모는 곰팡이(균류)의 일종입니다.
  • 산소가 있으면 호흡을 하지만,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는 당을 분해하여 에탄올(알코올)과 이산화탄소(CO2)를 만들어냅니다.
  • 술과 빵을 만들 때 사용됩니다.

2. 젖산 발효 - 유산균

  • 유산균은 세균입니다.
  •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당을 분해하여 젖산을 만들어냅니다.
  • 김치와 치즈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됩니다.

3. 초산 발효 - 초산균

  • 초산균도 세균입니다.
  • 다른 발효와 달리 산소가 있는 환경에서 에탄올을 초산(식초)으로 바꿉니다.
  • 식초를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이 세 가지만 기억하면 아래의 모든 음식이 이해됩니다.


술 만들기

술을 만들 때 효모를 쓰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에탄올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효모는 당을 먹고 에탄올을 내놓으니까, 우리는 효모에게 당이 들어있는 재료를 주면 됩니다. 포도, 보리, 쌀 같은 것들이요.

와인: 가장 단순한 술

와인은 포도주입니다. 포도에는 포도당이라는 단당류가 풍부합니다.

잘게 간 포도 + 효모 → 밀폐된 탱크에서 발효 → 와인

효모가 산소 없는 탱크 안에서 포도당을 먹고 에탄올을 만들어냅니다. 이게 끝입니다.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죠?

맥주와 막걸리: 한 단계가 추가된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효모는 포도당 같은 작은 당(단당류, 이당류)만 분해할 수 있습니다. 보리나 쌀에 들어있는 녹말은 너무 큰 다당류라서 효모가 직접 분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녹말을 잘게 잘라주는 도우미가 필요합니다.

원료녹말을 잘라주는 도우미
맥주보리맥아 (싹 틔운 보리)
막걸리누룩 (곰팡이가 붙은 밀)

도우미가 녹말을 작은 당으로 잘라주면, 그 다음은 와인과 같습니다. 효모를 넣고 산소를 차단하면 술이 됩니다.

도수의 한계: 왜 발효주는 15%를 넘기 어려울까?

이렇게 효모가 직접 발효시켜 바로 마시는 술을 발효주라고 합니다. 와인, 맥주, 막걸리가 전부 발효주입니다.

발효주는 일반적으로 알코올 도수 15% 를 넘기 어렵습니다. 이유가 재미있는데요. 효모가 에탄올을 너무 많이 만들면 그 에탄올 때문에 효모 자신이 죽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만든 독에 스스로 죽는 셈이죠.

15% 이상의 술(소주, 위스키 등)을 만들려면 증류라는 별도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다루겠습니다.


식초 만들기

식초의 원리는 정말 단순합니다.

에탄올 + 초산균 + 산소 → 식초(초산)

초산균이 에탄올을 초산으로 바꿔줍니다. 다른 발효와 달리 산소가 필요하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와인 병을 열어두고 잘 관리하지 않으면? 공기 중의 초산균이 들어와서 와인이 식초가 됩니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식초는 술이 상해서 발견된 것이라고 합니다.


빵 만들기

빵을 만들 때도 효모를 사용한다는 건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빵에서 효모를 쓰는 이유는 술과 다릅니다.

빵에 효모를 넣는 이유

술은 에탄올이 목적이지만, 빵은 이산화탄소(CO2)가 목적입니다.

효모가 에탄올 발효를 하면 에탄올과 함께 CO2가 나옵니다. 이 CO2 기체가 반죽 안에서 빵을 부풀게 만듭니다. 에탄올은? 빵을 구우면 전부 날아갑니다. 빵에 알코올이 들어있는 건 아니니 안심하세요.

밀가루와 글루텐

여기서 밀가루 이야기를 잠깐 해야 합니다.

밀에는 탄수화물 말고도 글루테닌글리아딘이라는 단백질이 들어있습니다. 밀가루를 물과 함께 반죽하면 이 두 단백질이 결합해서 글루텐이라는 그물망 구조를 만듭니다. 쫄깃쫄깃한 탄성을 주는 녀석이죠.

글루텐 함량에 따라 밀가루의 종류가 나뉩니다.

밀가루글루텐 함량식감용도
강력분많음쫄깃쫄깃
중력분보통적당
박력분적음바삭, 부서짐케이크, 쿠키

빵이 부푸는 원리

빵 반죽(강력분 + 물)에 효모를 넣고 산소를 차단하면 발효가 시작됩니다. 효모가 만들어낸 CO2를 글루텐 그물망이 꽉 잡아서 빵이 예쁘게 부풀어 오릅니다.

글루텐이 적은 박력분으로 빵을 만들면 CO2를 잡아둘 그물망이 부족해서 예쁘게 부풀지 않습니다. 그래서 빵에는 강력분을 쓰는 것이죠.

강력분 반죽 + 효모 → 발효(CO2 발생) → 글루텐이 CO2를 가둠 → 부풀어 오름 → 오븐에 구움 → 빵!

치즈 만들기

치즈와 버터를 이해하려면, 먼저 우유의 구성 성분을 알아야 합니다.

성분이름역할
탄수화물젖당유산균의 먹이
단백질카제인, 유청 단백질치즈의 주재료
지방유지방버터의 주재료
기타미네랄, 비타민 등

이 등장인물들을 기억해두세요. 앞으로 전부 등장합니다.

치즈의 정체

치즈는 한마디로 우유에서 카제인 단백질과 지방을 뽑아낸 덩어리입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카제인을 뽑는 과정에서 지방이 함께 딸려 나오는 것입니다.

만드는 과정

  1. 멸균 우유를 저온으로 데운다
  2. 스타터 유산균을 넣는다 - 유산균이 젖당을 분해하면서 젖산이 생기고, pH가 낮아져 산성 환경이 됩니다.
  3. 렌넷(효소)을 넣는다 - 렌넷은 카제인 단백질을 끊어서 서로 뭉치게 만드는 효소입니다. 산성 환경에서 잘 작동합니다.
  4. 커드와 유청으로 분리된다
    • 커드(Curd): 카제인과 지방이 뭉친 순두부 같은 덩어리. 치즈의 초안입니다.
    • 유청(Whey): 유청 단백질, 미네랄, 젖당 등이 남은 액체입니다.
  5. 커드에서 수분을 빼면 치즈가 된다 - 잘라서 끓이고, 틀에 넣고, 눌러서 수분을 날립니다.

여기서 바로 먹으면 신선 치즈(생 치즈), 숙성을 거치면 숙성 치즈가 됩니다.

  • 모짜렐라 = 대표적인 신선 치즈
  • 리코타 = 커드를 걷어낸 뒤 남은 유청으로 만든 치즈. 엄밀히 말하면 카제인 치즈가 아니라 유청 치즈입니다.

버터 만들기

치즈가 우유에서 “카제인 + 지방"을 뽑은 거라면, 버터는 지방만 뽑은 것입니다.

생크림이란?

버터를 이해하려면 먼저 생크림(Dairy Cream)을 알아야 합니다.

종류지방 함량
무지방 우유약 0%
저지방 우유1~2%
일반 우유3~4%
생크림30~40%

생크림은 지방 함량을 높인 우유입니다.

옛날에는 우유를 가만히 두면 위에 지방층이 뜨는데, 이걸 걷어내서 생크림을 얻었습니다. 가장 맛있는 윗부분이라는 뜻에서 영어에 “Cream of the crop”(최고 중의 최고)이라는 표현이 생겼을 정도입니다. 현대에서는 원심분리기로 효율적으로 분리합니다.

생크림에서 버터까지

생크림 → 휘핑(공기를 넣어 거품) → 휘핑 크림(케이크 위의 그것)
생크림 → 더 강하게 농축 → 지방만 남김 → 버터

생크림을 휘핑하면 지방 사이에 공기층이 생기면서 휘핑 크림이 됩니다. 케이크 위에 올라가는 부드러운 크림이 바로 이것이죠. “생크림 케이크"라고 부르지만 정확히는 휘핑 크림 케이크입니다.

여기서 훨씬 더 강하게 농축시켜서 지방만 남기면? 그것이 버터입니다. 한마디로 버터는 유지방 덩어리입니다.


정리

결국 모든 것은 미생물과 그들의 먹이에서 시작됩니다.

음식미생물먹이결과물
술 (와인, 맥주, 막걸리)효모당류에탄올 + CO2
효모밀가루의 당CO2 (부풀림)
식초초산균에탄올초산
치즈유산균 + 렌넷젖당 → 젖산커드(카제인+지방)
버터-우유의 지방 분리유지방 덩어리

미생물이 자기 밥을 먹고 살아남으려고 하는 활동의 부산물을 우리가 맛있게 먹고 있는 셈입니다. 자연의 순환이 참 신기하지 않나요?